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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사 바늘 2009.01.23
  2. 소설 : 병신 병수 2009.01.21

주사 바늘

from 분류없음 2009.01.23 19:57

주사 바늘

직경 1 cm 철판으로 만든 것 같이, 주사 바늘이 확대되어 보인다. 투명한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며 나에게 다가 온다.
바늘의 끝이 아무리 확대되어 크게 보이더라도 내 피부를 이루는 세포 사이를 뚤키는 충분히 날카롭다.
나의 심장을 향해 다가 온다.
바늘은 심장 위의 피부를 '쑤욱'하고 뚫는다.
도끼다시 수채구명 처럼 내 피부가 주사 바늘을 중심으로 움푹 들어 간다.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아마도 엄청난 속도로 내 피를 빨아 내는지 모르겠다.
보름 만에 피는 담배의 느낌처럼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도파민이 뇌에서 분비된다.
내 모든 기억이 포멧되는 하드디스크 처럼 순시간에 삭제된다.
이 것이 첫 키스의 황홀한 느낌이었던.... (뚜~~ 뚝.)

- 2008.11.13, j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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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병신 병수

from 분류없음 2009.01.21 16:06


오늘도 병신 같은 병수는 양재천을 걷는다.
'Pat Metheny'의 'Are you going with me?'의 전주에 나오는 '단따단따 따다' 하는 단순한 리듬을 타며 춤추듯 걷는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병수는 잘나가는 회사는 아니지만 사내에서는 인정받고, 남들보다 진급도 빠르고 외부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는 좀 나가는 부장이다. 오늘도 병수는 '병신 병수' 이란 단어를 중얼거리며 빔벤더스 감독의 '파리,텍사스'에 나오는 미국의 '파리텍사스'로 가는 황야에 굴러다니는 짚 넝마처럼 뒹굴뒹굴 양재천을 걷고 있다.

병수는 오늘 어김없이 형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친구가 일식을 좋아한대 내가 아는 여의도 일식 집을 예약해놓을 테니 그 친구와 전화해서 약속 잡아!"

2살 위의 형님과 5살 아래의 동생은 오래 전에 결혼해서 날라리 딸과 고집불통 뚱땡이 아들을 낳아 지내 들 끼리 치고 받으며 잘살고들 있다. 어려서 일직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을 병수는 얼굴도 기억 못한다. 당시에 형님 병식이 9살이고 병수는 4살 이었다. 사고 이후로 큰아버님 댁에서 자란 병수 삼형제는 부모님 없이 큰댁에서 같이 사시는 할머님을 어머니 삼아 자랐다. 큰댁의 사촌들과 다툼이 있으면 눈치를 살펴야 하는 환경이므로 병수 형제는 형님 병식이 아버지 역할을 했다.

환경 탓으로 형제애가 두터웠던 병수 형제는 남달리 어려서부터 눈치가 빨라야 큰댁 사촌들과 지낼 수 있었다. 병수가 사촌들과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 마다. 병식은 병수를 나무랐다. 그래야 큰어머님 눈치를 벗어 날 수 있었고 병수가 그나마 사회생활을 건전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어려서부터 형님의 도덕적인 규율과 복잡한 환경에서 세상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 이었다.

일지기 출가한 형제들과 달리 병수은 10여 년을 혼자 살고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정확하게 중간만 해온 병수은 군대에서도 '나서지 말고 중간만 하라' 라는 사적 규율을 정확히 따랐다. 학교생활에서의 성적도 중간에서 10% 위아래를 벗어 난 적이 없다. 1년을 같이 지낸 반 친구가 병수가 같은 반 친구라는 것을 생소하게 생각 할 정도로 세상에 없는 듯 조용히 지냈다.

환경적인 영향으로 의견을 내거나 일을 주도 할 수 없었으므로 생활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오로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으로 해소했다. 그래서 학교 내 백일장에서는 언제나 은상이나 동상을 받았다.
대학에 입학하며 시작한 10여 명과의 연애도 양재천을 걸을 때 '병신' 외치는 듯 언제나 숙맥처럼 마무리 했다. 군대 입대 전에 사귄 여자 친구를 군대 기간 합해 4년 간 사귄 것 이외에는 3개월을 지속한 적이 없다.

어느덧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병수는 요 몇 년 뜸하다 오랜만에 형수님 소개로 여자를 만났다. 하지만 이번도 연달아 했던 3여 년 전의 '선'과 마찬가지로 별 감동이 없다. 마흔이 넘은 병수의 나이 탓도 있겠지만 도무지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 '선'을 보는 병수 자신은 덤덤하게 지내는데 도무지 가족들이 병수를 가만 두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역할을 해왔던 형님은 의무감으로 여러 가지 연애 기술에 대한 충고를 하지만 10여 년이 훌쩍 넘은 형님의 연애 기술이 지금 먹힐 리 없다.

주선자인 형수님도 오케스트라 지휘자 입장에서 여자 쪽 어머님과 통화하며 병수에게 줄기차게 방법을 전수한다. 병수의 파트너 역할을 하는 규수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 좋아하는 음악이나 심지어 지난 연애 시절에 실패했던 원인 등도 형님을 통해 전달 한다. 상대 규수의 나이도 있고 해서 규수의 부모님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다.

'중간맨' 병수도 요번 기회는 상대의 집안 분위기와 부모님 교양 수준을 생각해서 결혼을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지만 도무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자신은 덤덤한데 형님 내외와 규수 부모님들이 작당 모의 하듯이 2대 2대로 미팅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에 정신을 잠시만이라도 놓으면 3개월 내에 병수도 모르게 결혼이 되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병수는 갑자기 "내가 주도하지 않는 결혼을 나도 모르게 해버리면,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지?"라고 생각하며 아무래도 이 번 만남을 정리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살아 왔듯이 이번도 '중간맨'으로 미적미적 넘어 갔다가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섬뜩함을 느낀다. 결혼은 문제가 생기면 내가 감수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자신 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 가족들이 포함된 10명 곱하기 10명 해서 100개의 연결이 있는 복잡한 문제이므로 문제가 생길 경우 자신이 책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깝지만 요번은 정리하고 다음 기회에 병수 자신이 마음이 동하고 자신이 주도해서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언제쯤 병수는 'Branford Marsalis'의 음악처럼 풍부하고 산뜻하게 살 수 있을까? 병수는 양재천을 돌아 집에 오는 길에 조용히 외친다. "아! 오랜만에 그의 앨범 'I heard you twice the first time'을 듣고 싶다." 속으로 생각한다. '집에 들어가서 지난 생일에 형 병식이 사준 와인 한 병 까서 생수와 같이 마시며 지난 주부터 줄거리 잡아 놓은 장편 소설이나 써야겠다.'


- 2008.07.23, j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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