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음악'

from 常/글쓰기 2011.05.23 21:39


1987년 경 입니다. 대학을 다니는둥 마든둥 하던 때입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고등학교 후배 녀석이 집에 놀러 왔습니다. 그는 어려서 부터 혼자 살고 있는 녀석이라 외로움을 많이 탔습니다. 어머니는 주로 외국에 거주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아니, 그 이전 부터 혼자 살았습니다. 한참 언덕에 있는 우리 집에 오기 위해서는 등산하듯이 힘들게 와야하는데 그날 그 녀석이 기특하게도 집에 놀러 왔습니다. 하지만 집에 와봐야 딱히 놀거리는 없었습니다. 그저 방에 벽을 기대고 누워서 방안에 있는 책들을 뒤지거나 많지는 않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음악을 백판으로 듣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친구가 집에 오면 의례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들려주기에 바빴습니다. 상대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조금 아는 음악 상식이나 음악의 감동 포인트를 설명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습니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셔츠 윗 주머니에서 카세트 테입을 하나 꺼냈습니다. 일본에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어머니가 즐겨 듣는 테입을 듣고 마음에 들어 공테입에 복사를 했왔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외국의 음악은 구하기 힘들고 특히 일본음악은 전혀 입수할 루트가 없는 상황이라 새로운 음악 듣기를 즐겼던 나는 음악을 들어보지도 않고 거실에 있는 쾌핼 컴퍼넌트 셋트에 포함된 더블데크에 걸고 복사 버튼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워낙 악필인 후배 녀석이 공테입에 적어 놓은 음반 명은 가독할 수 없어 그냥 한문으로 '일본음악'이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1시간 정도가 지난 후 더블데크에서 테입을 빼서 방에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어떤 음악에 대한 애착은 선입견이 많이 작용하므로 그녀석의 말대로 좋은 음악으로 느껴졌습니다. 무었보다도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므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이가 어느정도 된 여성 보컬의 음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위 가창력이 있다는 가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창법이었습니다. '누가 나에게 노래를 하라고 했어!'라고 짜증을 내듯이 힘 없이 노래를 소화했습니다. 하지만 탄탄한 연주와 곡마다 개성있는 편곡으로 음반의 모든 곡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후에는 운전하며 생각날때 마다 들었고 표지에 써 놓았던 '일본음악'이라고 쓴 제목이 닳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테입이 수명을 다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로 그 음악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로 바쁘게 지내던 시절을 지내며 언제 부터인가 그 테입에 대한 생각을 잊었습니다. 하루는 기회를 잡아 필요없는 물건을 정리하려던 차에 자동차에 카세트 테입 플레이어가 CD 플레이어로 교체되고, 데크가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 500여 개가 되는 테입을 모두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날, 테입을 모두 몇 개의 비닐 봉지에 오와 열을 맞추어 깨끗하게 포장한 후 플라스틱 분리수거 함에 버렸습니다. 그때, '일본음악' 테입이 그 500여개 테입 더미에 포함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Mika Nakashima의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 그 '일본음악' 테입이 정말 듣고 싶습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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